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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정신건강부스 참관기
LA 한인정신건강부스 참관기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 승인 2019.11.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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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준, 오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요새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와인을 좋아하고 싶은데 와인은 최상급 제품에 도달하기가 소위 요새 말로 넘사벽이어서 와인 대신에 최상급 제품이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사케를 즐기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애국자라서는 아니지만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질 즈음에 사케 범주가 너무 좁은 것 같아 사케에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와인에 대해서 다시 접근하였고 나파밸리 와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사이드웨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두 친구가 총각 파티를 하며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를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잔잔한 사건과 우정, 사랑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를 본 이후로 미국의 서부를 방문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아가들을 재운 후에 늦은 밤에 와인을 혼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와인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자유 연상하듯이 늘어놓는 것은 이번 2019년 9월 26일부터 9월 29일까지 LA에서 있었던 한인 축제 중 정신건강부스에 참석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참석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올해 10월 말 정도에 개원하려고 했고 그 사이에 준비할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결혼한 후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 적이 없어서 열심히 일했던 나를 위한 선물도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딸을 양육하고 있는 남편으로서 아내와 애들만을 남겨두고, 또한 공동개원하는 친구에게 혼자 준비하라고 하고 길을 떠나기에는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LA 한인정신건강 축제에서 개원을 홍보하고 미국에서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도 확인해 보겠다는 명분과 와이너리에 대한 욕구가 미안함과 바쁜 사정을 물리쳤습니다. 참석 동기가 LA 한인들에게 상담을 하면서 도움을 주겠다는 거시적이고 2차 이득이 없는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고백합니다. 
 


미국에 도착했고 처음 부스에 갔을 때는 그 지역에서 바비큐를 굽느라 행사장을 연기가 뒤덮었고 축제 분위기는 연출되었습니다. 행사장 한쪽에 위치한 정신건강부스를 찾았는데 소녀 같은 인상의 여성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닥터 손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간 메일을 주고받았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행사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서 첫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한국의 정신건강관련 행사에서는 무료 상담을 여러 번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은 점이 달랐고 아쉬운 면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께서 LA지역에서는 무료 상담이나 부스에서의 상담 진행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명쾌히 알려주셨고 그 뒤로는 마음 편히 일 할 수 있었습니다.
 


4일간의 행사는 오전, 오후, 저녁으로 참여하는 선생님들이 스케줄을 정해 부스를 지키며 진행되었습니다. 이곳은 하버드의과대학병원 정신과 선생님께서 주관하였고 하버드 의대와 UCLA의대, 한국인 상담기관 등 여러 곳에서 참석하였습니다.

방문하신 분들에게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서 겪는 어려움이 있어도 상담하기가 쉽지 않고 정신과 방문을 터부시하고 경시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음을 알렸습니다. 특히 한인사회에서 세대 간에 겪는 갈등과 가족 간의 어려움이 있고 이 사이에서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있어도 이를 상의할 곳이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분이 많아 이러한 정신건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홍보를 위함을 설명드렸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마법의 녹색, 남색 에코백 장바구니를 준비하였고 그 안에 정신건강에 대한 자료와 상담기관들 연락처를 넣어두었습니다. 에코백은 그냥 가져가셔도 된다고 매번 외쳤는데, 진료실에서 근엄하게 앉아 있는 한국에서는 겪지 않을 경험이었습니다. 그래도 간간히 개인적인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분에게 아주 짧게나마 지지와 격려를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미국에서 특히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공짜로 나누어주는 것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기도 하셨으나 이는 이민자로서 겪는 환경적인 적응 때문일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일부 한인들이 이러한 부스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상황에서 한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이곳에서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나 분명 한국보다는 복지와 소위 선진국에서 누리는 문화적인 장점 등 좋은 환경이 제공되는 혜택을 누릴 수는 있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또 하나 궁금했던 정신과 의사의 위상은, 이를 급여로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수요 공급 법칙이 적용되는 자유 시장경제 기준으로 따지면 수요가 많아졌음은 분명하였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의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단순한 동경이 있었던 의과대학 시절에, 정신과 의사 페이는 가정의학과 다음으로 낮고 기피한다는 정보를 접한 이후로 그 동경은 현실적인 이유로 사라졌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예상했던 연봉이 10만 달러 이상 수준이 아니라 최소 30만 달러 이상이고 35만 달러는 제시받아야 정신과 의사일을 협상을 하려 한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직접 부딪히지 않고 성급한 판단으로 미래의 방향을 차단했던 경험이 아쉽게 생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아직 취학 전이기는 하나 기러기 아빠를 비롯하여 교육 때문에 도미를 하거나 유학을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아 자녀 교육을 생각하는 부모로서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인 2세나 초중고에 유학 온 경우, 그리고 레지던트를 마치고 미국에 오신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복지나 삶의 질 부분에서는 분명히 한국의 현실보다 나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남과의 비교가 현실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면이 있지만 선진 학문에 대한 동경은 인정하고 나니 편하게 미국에서의 삶을 좋아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1세대로서는 고생할 수도 있겠으나 2세가 누리는 환경적인 혜택은 커 보였습니다.

다만 거기서 태어나서 자라난 선생님과 나눈 얘기가 그들의 또 다른 막연한, 어쩌면 원형적인 그리움을 짐작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에 왠지 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러한 의식 바닥에 놓인 공통적인 바탕을 우리는 밟고 다니고 있고 그렇게 해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LA에서 마지막 저녁 처음 만난 미국 정신과 선생님이랑 술자리를 하는데 제 지인이 서로 친구임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고, 한국에 있는 그 친구를 카카오톡 영상 전화로 불러내어 수염이 거친 남자 셋이서 다정하게 정을 나누었습니다. 아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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