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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아카데미
미래아카데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 승인 2019.02.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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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 서화연]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 아닐까. 미래아카데미를 알게 된 것은,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성큼 가을이 온 어느 날이었다. 미래는 언제나 매력적인 상품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감 중 하나는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 아닌가. 나는 이미 기존 제도와 사회, 관념을 흔들고 있는 4차 혁명의 가운데서 길 잃은 아이처럼 눈을 이리로 저리로 돌리고 있었고, 미래아카데미는 그런 이유에서 거부할 수 없는 상품이었다. 또 40세 이하의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대상으로 하다니.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닌가? 한정수량은 대개는 매력적인 법이다.

 

금요일 오후에 들뜬 마음으로 일터를 나섰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 그리고 주말.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남산 중턱의 유스호스텔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장소였다. 아이들이 그랬고, 꽤 오래된 시설이 그랬다. 미래 아카데미는 시작부터 흥미진진하고 도발적이었다. 박재영 청년의사 주간의 개념의료@정신건강의학과라는 강의는 의료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의료는 사회 안에서 복잡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환경에 대해 다양한 의문을 가진 내게 강의는 여러 가지 힌트를 주었다. 왜 의사들과 환자들 모두 이 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학은 과학이자 기술이지만, 의료는 문화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법, 정치, 문화 등의 이해가 요구되었다. 곧이어 국내 정신건강정책의 현황과 개선 방향에 대한 이해국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본인이 어떻게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어떤 계기로 연관된 연구들을 수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요지는 한번 시작하니 빠져나오기 힘들었다(?)였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연구의 매력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은 기관들과 주제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았다.

남산 역사탐방은 일제 강점기에 남산에 세웠던 일제의 잔재들을 방문하고 연관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정신과 의사이자 제약회사의 CEO인 윤도준 회장님은 남산의 기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본 프로그램을 만드셨다고 한다. 역사는 현재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간 위에서 촘촘히 직조된 씨줄과 날줄과 같다. 프로그램 처음에는 ‘정신과의 미래가 일제 역사와 무슨 상관이람’이란 불평이 있었지만, 현재로써의 역사라는 메타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미래 세대는 강하게 키워야 된다는 기획자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쉴 틈도 없는 강의가 다시 이어졌다. 채정호 교수님은 ‘강의에 관한 강의’ 즉 강의를 통해 소통하는 법을 말씀해주셨다. 내용보다는 강의하시는 모습 자체가 좋은 강의가 되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작은 술자리가 열렸다. 처음으로 이곳에 함께 참여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아직 전공의도 있었다. 군의관도 있었고, 의원을 운영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술잔을 더 기울일수록 솔직한 목소리들이 나왔다. 여기 젊은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했다. 진료실을 벗어나서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 했다. 신문과 같은 전통 매체로부터 팟캐스트,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매체까지 다양한 채널로 대중과의 소통을 고민하고 있었고, 인문학, 인류학, 역사, 뇌과학 등 인접 학문과의 소통도 시도하고 있었다. 거기엔 호기심 어린 눈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벼운 발걸음, 함께 잡은 손이 있었다.

 

“Everything changes.” 사피엔스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빌 하라리가 미래에 관한 그의 저서인 호모데우스의 첫 장에 자필로 쓴 말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역사에 존재하는 혁명들은 인간의 삶을 그 전후로 크게 나누었고, 그 변화는 빠르든 늦든 인류 전부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그 변화를 일찍 받아들인 인간들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생산했을 뿐이다. 농업혁명 이후 수렵과 이동을 하던 인간 집단은 농업을 시작하고 정착한 인간들에게 자리를 빼앗겨 결국 대부분 사라졌다. 산업혁명도 그랬다. 혁명 이후에 농업을 하던 나라들은 먼저 산업화를 성공한 나라들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후에는 결국 산업화되었다. 정신과의 환경도 변화의 물결에서 예외가 아니다. 2016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됐으며, 법 개정의 결과가 2년이 지난 지금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정신의학의 중요성이 우리나라에서 부상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령도 만들어지거나 개정되고 있다. 증가하는 자살률은 진료실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며, 가족의 해체, 사회의 양극화, 경제 문제와 맞물려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내담자의 비언어적 메시지까지 읽어내서 상담에 적용하는 상담 AI까지 개발되었으며, 목소리로 기분을 파악하거나 행동량으로 우울증이나 조증의 재발을 예측하는 시스템도 개발되었다. 또한 기존 정신과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정신분석과 정신치료조차 직종을 제한하지 말라는 사회적 압력도 또한 받고 있다. 학회에서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능한 서퍼에게 파도는 즐겁다.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미래아카데미를 통해 성장하고 준비되어서, 함께 다가오는 변화의 파도를 즐겁게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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