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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시험 합격소감] 4년차를 마치며
[전문의시험 합격소감] 4년차를 마치며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 승인 2019.02.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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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국립정신건강센터)

 

4년 간의 수련기간을 돌아보는 글을 쓰고자 오늘도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앉았습니다. 지난 수련기간을 비유해 본다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시간은 커피와 닮은 것 같습니다. 쓰면서도 향긋한, 많은 과업으로 달려야 하는 일상에서 꼭 필요한 커피 말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은 오랜 간절한 꿈이자 목표였기에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수련병원에 합격했단 사실을 확인하고 컴퓨터 앞에서 엉엉 울었던 것이 4년 전 겨울이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단 소식에 이번에는 부끄럽게도 많은 선배 전문의 선생님들과 의국 후배들 앞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던 것이 이번 겨울입니다. 그 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부족했던 저를 지지하고 가르쳐 주셨던 여러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함,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등이 교차합니다. 

 

1년차, 파릇파릇하지만 미숙함이 컸던 시기에 정신증 환자들을 만나며 선생님들께 엄하게 지도받았습니다. 케이스 발표나 회진을 위해 잔뜩 긴장하여 만반의 준비와 공부를 했어도 꾸중을 들을 때가 더 많았지요. 서툰 의국생활과 환자를 보며 어려움이 컸던 그때 병동환자들과 목련과 개나리가 흐드러진 병원 앞마당을 산책하는 시간은 ‘힐링’이었습니다. 등나무 밑에서 환자분들이 뽑아내는 구수한 노래를 듣기도 했지요.

제가 당직이면 유난히 응급실 환자가 많고 병동에도 위급한 콜이 많던 저는 소위 ‘환타’였지만 그 덕분에 진료의 실전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밤새며 고생했던 적도 많았지만 막상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면, 캄캄한 여름밤에 병원 건물 사이사이에 심어진 흰 아카시아 나무에서 나던 알싸한 향기가 코에 스치는 듯합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난방이 들어오면 탕탕 하는 큰 소리가 나면서 무섭기도 했을 텐데, ‘내가 오늘 밤 이 병원의 당직 정신과 의사란 말이지’라고 호기로운 감격에 젖기도 했습니다. 늦은 밤 병동을 오가는 길에, ‘한 손에는 가운을, 한 손에는 책을’이라고 늘 강조하셨던 선생님의 연구실이 불 밝혀져 있던 것을 보며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저희 병원은 제가 2년차에 올라가던 3월에 새 건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여러 안정병동의 많은 환자들이 안전하게 이사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큰일입니다. 당시 저는 노인병동에 소속되어 있어 몸이 불편한 어르신의 손을 잡고 새 병동으로 걸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병원의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하고 변화하는 데에 여러 직역의 선생님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변화에 적응했던 경험은 좋은 배움이었습니다.

소아 및 노인환자, 신경증 환자들을 만나고 정신치료를 배우고 감정 케이스를 보면서 수련은 보다 다양해졌습니다. 노인환자 분의 눈높이에 맞게 몸을 낮추어 면담하고 약을 쓰는 데 신중하신 선생님의 모습, 감정 환자에 대한 역전이로 인해 실수를 저질러 선생님께 눈물이 쏙 빠지게 꾸중을 들었던 기억, 제가 조모상으로 갑자기 병동을 비운 사이에 비슷한 상처가 있어 저의 부재를 유독 힘들어했던 환자와의 시간들... 정신과는 그야말로 저의 몸과 마음이 환자 치료의 도구가 되어야 하기에 수련이 더욱 치열했습니다.

고년차가 되어 아랫연차 선생님들을 가르치고 의국원들을 대변하고 의국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은 또 다른 몫이었습니다. 전문의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은 왜 그렇게나 어렵고 긴장이 되었던지요. 모든 시간들이 저를 발견하고 알아가고 성장하는, 너무 아팠지만 꼭 필요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함께 그 시간을 지나온 동료들에게도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저의 정신치료 슈퍼바이저 선생님과 치료자께도 두 분 덕분에 제가 그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 덜 외로웠다고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전문의 선생님들과 의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던 시절을 마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내딛는 발걸음에 사실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큽니다. 어쩌면 아직도 배울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어쩌면 때로 에스프레소처럼 쓰더라도, 진하고 쓸모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4년 간 오히려 저를 성장시켰던 많은 환자들의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 여러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지난 저의 삶의 경험이 제 진료실에서 더불어 살아 숨 쉬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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