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소리가 들리던 연말, 그리고 다들 새해 인사를 주고받기에 바쁘던 그때, 고 임세원 선생님께서 진료 중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비보에 함께 슬퍼할 여유도 없이, 스터디 동기 선생님들과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시험 준비에 다시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4년 간 숨 돌릴 새 없이 정말 열심히 수련받았는데도 이렇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나 싶었고,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치른 후에도 여러 감정이 섞여 복잡한 마음이었고, 운이 따랐는지 간절히 바랐던 전문의 자격시험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이번에 함께 합격한 다른 선생님들께도, 그리고 적절한 운이 따르지 않아 합격하지 못한 선생님들께도 모두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차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은 4년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마음을 닦는 시간이었습니다. 환자로 저를 만난 분들은 마음과 행동의 문제들로 고통스러워했고, 그 가시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저를 찌르는 것을 견디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면서, 저를 포함해 인간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다른 동기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고 무사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될 수 있게 해 준 모든 환자, 교수님, 지도감독 선생님, 선후배 선생님, 타 직역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그분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무사히 전문의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임상 외에도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뇌 영상 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도 받고, 딥러닝 기반 사회관계망(SNS) 자해 이미지 탐색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정신치료 챗봇 개발까지 시도했는데, 엉뚱한 일 한다고 면박 주기는커녕 어떤 것이든 관심사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을 장려하는 학과 분위기 덕에 바쁘지만 즐겁게 수련 시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모여 정신건강의학과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수련 기간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 친구들과 마음만큼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고 말은 했지만 실상 그것을 일상에서 잘 해왔는가 생각해보면, 항상 그렇지는 못했구나 싶습니다. 이젠, 적어도 우리들이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그것을 온전히 경험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니,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환자들, 동료 및 선후배 선생님들을 위해 이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전문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수련을 받으며, 정신건강의학과가 의료법 외에 법률이 따로 있을 정도로 타 진료과에 비해 사회와 한층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문에 힘든 일도 많지만, 그만큼 정신건강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니 전문의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문의로서 새 출발을 하는 전국의 모든 동기 선생님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싶습니다.
